강릉수문리당간지주에서 마주한 고요한 가을 품격
며칠 전 강릉 옥천동 쪽을 걷다가 바람에 흩날리는 억새 사이로 세워진 두 개의 돌기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곳이 바로 강릉수문리당간지주였습니다. 생각보다 높고 단단한 기둥이 하늘을 향해 서 있었고, 주변은 잔잔하게 정돈된 잔디밭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낮은 담장 너머로는 조용한 마을길이 이어졌고, 그 배경 위에 오래된 석재의 색감이 묵직하게 자리했습니다. 기둥의 틈새를 따라 손끝으로 만져보니 거친 돌결과 함께 세월의 냄새가 느껴졌습니다. 바람이 돌에 부딪히는 소리가 작게 울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시간을 잊었습니다.
1. 도심과 가까운 고요한 유산
수문리당간지주는 강릉시 중심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강릉역에서 택시를 타면 금세 닿을 만큼 가까웠습니다. 길은 평탄하고, 주변에는 옥천동 주택가와 논밭이 함께 어우러져 있습니다. 주차는 도로가 옆 공터에 가능하며, 평일 오전에는 한적했습니다. 안내 표지판이 잘 세워져 있어 내비게이션 없이도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입구에는 낮은 계단과 소나무 두 그루가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는데, 이 풍경 덕분에 작은 사찰의 입구로 들어서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도심 속에서도 이토록 조용한 장소가 있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습니다.
절터) 강릉 수문리 사지 당간지주
2025-5-28(수) 방문한 강릉시내 한복판에 서있는 강릉 #수문리당간지주 (江陵 水門里 幢竿支柱), 통일신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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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돌기둥이 만들어내는 균형의 미학
두 개의 돌기둥은 높이가 약간 다르지만 비례가 아름답게 맞춰져 있었습니다. 지면 위에 반듯하게 세워진 기단이 기둥을 단단히 받치고 있었고, 그 위로 세로 홈이 일정한 간격으로 파여 있었습니다. 이는 과거 당간(당 깃발)을 걸기 위한 장치로, 바람에 펄럭이던 깃발의 자취를 상상하게 했습니다. 햇빛이 기둥 사이로 스며들며 그림자를 길게 드리울 때, 마치 두 돌이 대화를 나누는 듯했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석재 표면의 마모가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전하고 있었고, 그 결이 햇빛을 받아 은근한 색을 냈습니다. 단순한 구조 속에서도 완벽한 균형감이 느껴졌습니다.
3. 강릉 불교문화의 흔적
이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한때 이 일대에 자리했던 사찰의 흔적으로 전해집니다. 사찰은 사라졌지만, 깃대를 받치던 두 기둥만이 남아 옛 절터의 존재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안내문에 따르면, 이곳은 강릉 지역 불교문화가 가장 활발하던 시기의 대표적 유적 중 하나라 합니다. 기둥의 윗부분에는 가는 홈과 장식이 남아 있었고, 전체적으로는 군더더기 없이 절제된 형태였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 절제 속에서 신앙의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이처럼 단 한 쌍의 돌로 과거의 정신을 이어가는 모습이 오히려 더욱 인상 깊었습니다.
4. 주변 공간의 단정함과 배려
유적지 주변은 잘 가꿔진 잔디와 낮은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작은 벤치와 안내 표석이 마련되어 있었고, 곳곳에 관리가 손길이 닿은 흔적이 보였습니다. 봄에는 진달래가 피어나고, 가을에는 낙엽이 돌기둥 사이에 고요히 내려앉는다고 합니다. 방문 당시에도 낙엽이 일부 모여 있었는데, 그 위로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아 사진으로 남기기 좋았습니다. 가까운 주민 몇 분이 산책을 하며 지나가다 잠시 인사를 건네기도 했습니다. 역사 유적임에도 일상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오래된 돌기둥이지만, 지금도 마을의 시간 속에서 함께 숨 쉬고 있었습니다.
5. 함께 둘러볼 만한 강릉의 명소
수문리당간지주를 둘러본 뒤에는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임영관삼문과 객사문을 함께 보면 좋습니다. 두 곳 모두 강릉의 행정과 문화가 오랜 세월 이어져 온 공간으로, 당간지주와 자연스럽게 맥을 이룹니다. 조금 더 이동하면 오죽헌과 선교장, 경포호가 이어져 하루 코스로 충분합니다. 특히 오후 시간대에는 경포호 둘레길 산책을 추천합니다. 햇살이 호수에 비치며 반짝이고, 도시의 소음이 서서히 멀어집니다. 당간지주에서 시작해 역사와 자연, 일상의 조화를 느끼며 걷는 일정은 강릉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여정이었습니다.
6. 방문 팁과 추천 시간대
이곳은 아침 햇살이 비칠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동쪽에 탁 트인 들판이 있어 햇빛이 돌기둥 사이로 부드럽게 들어옵니다. 여름보다는 봄과 가을이 관람하기 좋으며, 겨울에는 바람이 세기 때문에 따뜻한 옷차림이 필요합니다. 특별한 입장 절차 없이 언제든 방문할 수 있고,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해 질 무렵에도 은은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단, 돌기둥 주변은 낮은 턱이 있어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삼각대 없이도 자연광만으로 충분히 인상적인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조용히 머물다 보면 마음이 정리되는 듯한 순간이 찾아옵니다.
마무리
강릉수문리당간지주는 거대한 사찰이 사라진 자리에서 여전히 꿋꿋이 남아 있는 역사였습니다. 돌 하나, 그림자 하나에도 오랜 세월의 깊이가 배어 있었습니다. 소란스러운 장식 없이도 세련된 기품이 느껴졌고, 그 단정함이 오히려 더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다시 강릉을 찾는다면 봄 햇살이 비치는 날에 이곳을 다시 걸어보고 싶습니다. 오래된 돌기둥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세월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될 것 같습니다. 강릉의 조용한 품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 중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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